[중앙시평] ‘결연한 의지’가 허망해 보이는 이유
방어전략 대통령 임기 중엔 불가능 당장의 위기 완화할 대안 절실 대화와 협상 중요성 대두 섬멸만 있는 네오콘식 처방 잘못 단임제 대통령 한계를 인정해야 평화는 타협 통해 만들어가는 것
한반도에 전운이 감돈다. 미증유의 그림자다. 핵미사일로 무장한 북한의 위협은 이제 허구가 아니다. 우리 정부의 대응도 강경 일변도다. “한반도에 전쟁의 위험이 올 수도 있다.”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의 경고다. 일촉즉발 위기상황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9월 12일 3당 대표 회동과 이튿날 국무회의에서 현재의 위기상황에 대한 우리 정부 대응전략의 큰 얼개를 선보였다. 지금 단계에서 대화와 협상은 의미가 없으므로 제재와 압박에다 방어와 억제라는 군사적 수단까지 총동원해 평양의 항복을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언뜻 자명해 보이지만 언제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기’ 마련. 임기가 1년 반도 남지 않은 박 대통령이 제재와 압박, 방어와 억제라는 두 개의 축만으로 국민의 안위를 담보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먼저 대북제재와 압박전략을 보자. 박 대통령은 ‘국제사회 대 북한’이라는 대립구도를 전제한 뒤 제재와 압박의 국제공조를 통해 북한을 굴복시키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와 압박은 북한의 대화 복귀를 위한 수단이라고 못 박고 있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두 나라가 대화를 거부한 제재 일변도 정책에 적극 동참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들의 참여 없는 국제사회 공조는 공허한 메아리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미 고립될 대로 고립된 상황에서 제재와 압박에 내성을 키워온 북한이 그리 쉽게 두 손 들고 나올 리 만무해 보인다.
방어전략은 어떤가. 우리 정부는 북한 핵미사일 공격에 대비해 사드 배치와 패트리엇 성능 개량으로 맞서고 있다. 서울·경기 지역은 패트리엇으로, 남부 지역은 사드로 방어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어체계에 너무 많은 한계가 있음은 이미 잘 알려진 바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해도 내년 말까지 사드가 실제로 배치되기란 쉽지 않을뿐더러 그 주요 목적은 한·미 양국 군과 시설을 보호하는 데 있으므로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서울·경기 지역 미사일 방어를 위해 추진 중인 패트리엇 성능 개량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위협은 목전에 와 있는데, 이 사업은 2021년에야 전력화가 완료될 예정이다. 이들 사업이 끝나기 전에 북한이 미사일 공격을 감행한다면? 말 그대로 무방비 상태 그 자체다. 대통령의 전략 구상에 나 있는 가장 큰 구멍이다.
억제전략으로 내세운 킬체인과 대량응징보복(KMPR)도 문제투성이긴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핵미사일로 공격해 오는 그 순간 북한을 끝장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발사 전에는 킬체인으로 선제타격을 가하고 발사 후에는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계로 요격하며, 이마저 실패할 경우 대량응징보복으로 평양을 지도상에서 사라지게 만들겠다는 국방부의 구상은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 역시 박 대통령 임기 내에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게 함정이다. 선제타격을 가하려면 독자적인 정보정찰감시 자산의 확보가 필수적이지만 현재의 시간표대로라면 불행히도 이러한 능력은 2020년대 중반에나, 그것도 부분적으로만 갖춰질 예정이다. 전력화가 완료되는 시점까지는 미군 자산을 통해 위협을 식별한다고 치자. 킬체인이나 응징보복작전을 수행하려면 이에 맞는 정밀무장이 충분히 확보, 비축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 무기체계는 고가라는 이유로 전시대비 보유분이 10일 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공격하고 싶어도 공격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더욱 한심한 것은 정부가 이러한 공세적 억지전략에 필수적인 전력증강사업 대부분을 차기 정부로 이관시켜 놓았다는 사실이다. ‘싸워 이기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말하는 대통령의 목소리가 허망하게 들리기까지 하는 이유다.
따져볼수록 결론은 명확해진다. 국민의 안위를 담보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 핵미사일로부터 영토를 방어하고 억제할 대비책 마련은 계속돼야 한다. 그러나 당장 눈앞의 위기를 완화할 단기적 대안 또한 절실하다. 여기서 대화와 협상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전쟁 중에도 대화는 있어야 한다.” 이 역시 박 대통령이 남긴 말이다. ‘악마와의 협상에는 의미가 없으며 단지 섬멸만 있을 뿐’이라는 네오콘식 처방은 이미 오래전 잘못된 것으로 판명 났다. 그들의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단임제 대통령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첫 번째 출발점이 돼야 한다. 관리조차 불가능한 부정적 정책유산을 남기지 않고 국정을 마무리하려면 길은 그것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화는 이겨서 쟁취하는 게 아니라 타협을 통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역사의 교훈을 유념해야 하는 이유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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