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0호
김명세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북한에서 조용히 벌어지는 ‘시조’ 지우기
새로 집권한 정권이 이전과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것은 대부분 국가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다. 그 차별성은 정책의 극명한 차이를 드러내는 여야 정권 교체에서 확연해지는 반면 여당의 재집권에서는 미미하다.
재집권에서 보이는 정책의 미미한 차별성은 여야 정권 교체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일당독재체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역사적으로 대표적 일당체제인 공산당체제에서 정권 교체 계기는 권력 투쟁보다 최고지도자의 유고가 많았다. 흐루시초프를 제외한 소련공산당 역사가 그러했고, 휴전선 너머 북한 노동당 역사가 그러하다. 더욱이 북한은 최고지도자들의 유고로 수평적 정권 교체가 아닌 3대에 걸친 부자 세습으로 권력이 이어지고 있다.
권력을 물려받은 북한 지도자들의 일성(一聲)은 선대와의 차별이 아니라 ‘영원한 계승’이었다. 1994년 7월 8일 선대 사망 이후 권력을 물려받은 지도자는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도 바라지 말라”는 일성으로 통치를 시작하였다. 2011년 12월 17일 역시 선대 사망으로 권력을 물려받은 현 지도자의 일성도 ‘유훈 관철’1)이었다. 그 계승이란 선대, 특히 시조(始祖)의 사상과 업적, 전통의 맥을 변함없이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선언일 것이다.
그러나 3대에 와서 그 전통의 맥에서 약간의 이상 기류가 감지된다. 지난 9월 6일 북한 최고 지도자는 오진우명칭 포병종합군관학교를 찾았다. 평안남도 순천에 있는 포병종합군관학교는 민가에서 떨어진 언덕에 비교적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이상 기류는 최고지도자가 한적한 이곳 군관학교를 찾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 명칭 변화에서 발견된다. 본래 이 학교는 포병군관학교로 시작하여 1993년 당시 주석의 동생 김철주의 이름을 따서 김철주포병군관학교로 개칭되었다가 1998년 김철주포병종합군관학교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이듬해 1999년 11월 9일 학교에 김철주 동상까지 세워 명실상부한 김철주 학교로 인식되었다.
1993년 포병군관학교에 갑자기 김철주 이름을 붙인 이유에 대해서는 1974년 2월 후계자 선정 이후 당에서 밀려난 주석의 동생이자 후계자의 삼촌인 김영주가 1976년부터 지방(자강도)에 격리되어 있다가 1993년 평양으로 올라온 것과 관련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당 조직비서와 부장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다 조카에게 밀려 장장 17년 세월 지방에 격리되었다가 올라온 삼촌의 분노가 깊은 한으로 맺혔으리라는 것은 가히 짐작이 간다. 평양으로 올라와 명예직에 불과한 부주석에 오르긴 했으나 쌓여 있는 분노를 가라앉혀주려 그의 형 김철주 이름을 포병군관학교에 붙여준 것은아닐까. 그것이 삼촌과 조카 사이 갈등 해소처럼 보일 수도 있어 그해 해군대학에 김정숙 이름을 붙여주어 마치 전반적 우상화 차원에서 이뤄진 것처럼 보이려 했던 것은 더욱 아닐까.
김철주 이름으로 불리던 포병종합군관학교가 2017년 4월 15일 열병식에서 빨치산 출신에 무력부장이었던 오진우 이름이 붙은 오진우포병종합군관학교로 바뀌었다. 더 놀라운 것은 북한군 군의(軍醫) 최고 양성기관인 김형직군의대학도 주석의 부친 김형직의 이름이 사라지고 빨치산 출신에 부주석이었던 임춘추의 이름이 붙은 림춘추군의대학으로 바뀐 것이다2). 놀라움을 넘어 충격을 안겨 준 것은 2022년 10월 17일 최고지도자가 방문하여 기념 강의를 했고, 올해 5월 21일 준공식에 이어 6월 1일 개교식과 함께 연설했던 노동당중앙위원회 중앙간부학교가 이전에 주석의 이름으로 불리던 ‘김일성고급당학교’라는 사실이다. 김일성고급당학교는 인민경제대학(경제간부), 금성정치대학(청년간부), 국제관계대학(외교간부), 강반석혁명학원(여성간부)과 더불어 노동당이 직접 운영하는 5대 당간부양성기관의 하나로 북한 고위 당일군들을 키워내는 최고 학교이다. 1972년 김일성 고급당학교로 개칭되어 장장 50년 동안 불러온 명칭에서 그 이름이 사라진 것이다. 기관 명칭에서 주석의 이름이 사라진 것은 그뿐이 아니다. 2021년 4월 29일 청년동맹 제10차 대회에서 조직의 명칭이 ‘김일성-김정일청년동맹’에서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으로 바뀌었다.
기관이나 조직 명칭에서 소위 ‘가계’의 이름들을 지운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주석의 이른바 ‘권위’와 직결된 매우 신중한 문제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 최고지도자밖에 없다.
얼핏 기관이나 조직 명칭에서 이른바 ‘시조’와 그 가계의 이름들을 내리는 것이 그간 주민 들을 우매화해 온 우상화를 중단하려는 획기적이고 민주적인 발상이 아닐까 낙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련의 조치들에서 그 낙관은 순진한 희망이었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2021년 최고지도자는 주석이 수십 년간 사용했던 보통강반의 ‘5호 저택’을 철거하고 다락식 호화주택을 건설하여 2022년 4월 준공하였다. ‘5호 저택’은 주석이 1977년 4월 금수산궁전으로 가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다. 근처에 경호를 담당하는 호위사령부와 북한 최고의 의료기관인 봉화 진료소가 위치한 이유가 바로 ‘5호 저택’ 때문이다. 이런 ‘5호 저택’을 철거한 이유에 대해 당시 건설장 시찰 기록영화는 최고지도자가 “한 나라 수령이 살았던 집으로는 초라했고, 그 자리에 호화주택을 지어 인민들에게 공급해 주면 수령님께서도 좋아하실 것”이라고 말했다고 언급하 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간 주민들에게 해온 우상화 선전과는 사뭇 다른 내용이다. 지금껏 노동당은 ‘소탈’과 ‘검소’를 수령의 ‘인민적 품성’으로 주민들에게 늘 선전해왔다. 정말로 ‘5호 저택’이 한 나라 수령이 살았다고 하기에 너무나 초라했다면 이보다 더 생생한 선전물이 어디 있겠 는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그것은 천백마디 말보다 수령의 검소를 확인해 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물이다. ‘5호 저택’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주민들에게 참관하도록 했다면 만수대 언덕 혁명박물관 100개 이상의 효과를 냈을 것이다. 수천 편의 수령 영화를 만들고, 수만 편의 수령 노래를 지어 불러도 ‘소박한 5호 저택’ 하나가 주는 검소의 진실성을 절대로 대신하지 못한다. ‘인민의 수령’을 순간에 납득시킬 수 있는 그 소중한 증거물을 말끔히 철거해 버렸으니 당 선전사업에서 이보다 더 큰 해악이 있을까.
이번에 최고지도자의 오진우명칭 포병종합군관학교 시찰을 통하여 1999년 11월 학교에 세웠던 김철주 동상이 철거된 것이 확인되었다. ‘시조’가 살았던 집이 말끔히 철거되는 판에 그 동생의 동상이 없어지는 것쯤은 놀랄 일도 아니다. 또 학교 건물들에 붙은 구호들에서 선대의 이름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보다 앞서 올해 4월 25일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찾아 연설할 때 동상들을 측면에 둔 채로 만든 주석단에서 연설하였다. 2012년 10월 28일 대학 창립 60주기 행사 때 동상을 배경으로 하였던 것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올해 4월 북한 신문방송들에서 ‘태양절’이라는 말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니 ‘시조’ 지우기가 심화 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시조’의 영상이 자주 비치고 ‘시조’의 이름이 자꾸 언급될수록 현 지도자와 ‘시조’의 관계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게 된다. 그것은 ‘시조’와 현 지도자의 관계를 보여 주는 사진이나 동영상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를 높여준다. 그런 사진이나 동영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주민들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나중에는 관계를 의심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애초에 현 지도자가 ‘시조’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사진이나 동영상이 존재하지 않는 조건에서 이것은 엄청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 정치적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한 묘책의 하나로 ‘시조’ 지우기를 벌일 것이다.
다음으로 ‘핵 개발 완성’으로 주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대규모 온실 건설과 평양 5만 세대 살림집 건설, ‘지방발전 20×10정책’ 등으로 생활 안정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감 상승에서 오는 지도자의 자신감이 선대 그늘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로 나타난다고 본다. 과거 핸디캡에 갇혀 피동적으로, 소극적으로 대처하기보다 지도력을 통한 상황 개선으로 주민들의 지지를 얻는 정면 돌파를 택한 것이다.
그것이 정면 돌파인지, 위기 모면을 위한 꼼수인지 확인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집권 12년이 되도록 안정시키지 못한 주민 생활이 ‘지방발전 20×10년 정책’이 끝나는 10 년 후에는 반드시 개선될 것이라고 주민들이 계속 믿어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지난 12년 동안 핵과 미사일 개발을 비롯한 군사에 쏟아부은 돈을 경제에 투자했더라면 주민 생활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다. 아니 주민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추구했더라면 그만큼 외부의 위협도 줄어들어 핵ᆞ미사일을 개발할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한없는 특권을 가능하게 해주는 권력을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욕망에 있다. 그 욕망을 버리지 않는 한 10년이 아니라 20년, 30년이 흘러도 주민 생활은 절대로 개선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시조’와의 관계를 의심하는 주민들의 눈초리는 더 예리해질 것이다. 마침내 기만을 깨달은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게 되면 그렇게 지키려던 권력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 이를 것이다.
1) 김정은,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을 영원히 높이 우러러 모시고 장군님의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 조선노동 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 2011년 12월 31일.
2) 2023년 2월 8일 열병식부터 ‘김일성군사종합대학’, ‘김정일군정대학’, ‘김일성정치대학’을 제외하 고 개인 명의 대학ᆞ학교들은 ‘김책명칭 공군대학’, ‘김정숙명칭 해군대학’, ‘오진우명칭 포병종합군관 학교’, ‘림춘추명칭 군의대학’과 같이 ‘ooo명칭 군사대학ᆞ군관학교’로 불린다. 이것은 김정숙을 포함 한 다른 사람들과 김일성ᆞ김정일을 엄격히 구분하려는 의도로 보이며 그만큼 군대의 유일사상체계확립 수준 을 과시하는 것이다.
● Issue Brief는 집필자의 견해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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