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호
장 휘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2020년 21대 총선과 북한이탈주민의 정치참여
2020년 4월 15일에 실시된(사전투표 10-11일) 대한민국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2명의 북한이탈주민이 당선되었다. 미래통합당의 강남 갑 지역구 태구민 후보는 대한민국 총선 사상 처음으로 북한이탈주민 출신으로 지역구 의원에 당선되었다. 소위 꽃제비 출신으로 탈북 이후 한국에서 단체를 이끌며 북한 인권 운동을 하던 지성호 당선자는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의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 특히 주영 북한 공사로 근무하다가 2016년 탈북한 태구민 당선자는 국내외의 큰 주목을 받았다. 4월 16일 BBC는 “남한의 가장 부유한 지역에서의 태구민의 승리는 여전히 주목할 만하다”라고 보도하면서, 그의 승리가“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온 다른 탈북자들에게 긍정적인 신호를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BBC의 기대처럼 태구민 당선자의 당선이 탈북자들에게는 긍정적 신호를 주었을 수도 있겠지만, 남한의 유권자들에게 그의 당선은 기존의 이념적 대립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태구민 후보의 당선소식이 알려진 직후 온라인을 중심으로 냉소적인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에 탈북자를 위한 새터민 아파트를 의무적으로 넣어달라는 국민 청원이 등장해 이틀만에 11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는가 하면, 강남 지역의 행정지역명, 지하철 역, 브랜드 아파트 명을 북한식으로 바꾸어 부르는 등의 패러디가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이러한 발언을 하는 사람들을 “친문”으로 지칭하며 이들의 조롱은 탈북 소수자에 대한 혐오라고 비난했다. 이러한 일련의 에피소드들은 한국 사회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이 인식되는 방식에 대해 질문을 던질 기회를 주었다. 남한 사회에서 탈북 이주자들의 정치참여 – 선거권, 피선거권 – 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사회적 소수자로서 그들은 얼마나 한국 사회에 통합되어 있고 그들의 특수한 정치성은 한국의 제도 정치 안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되는가? 그러한 북한이탈주민들의 정치참여는 한국 사회에 어떤 균열을 만들어 낼 것인가? 더 크고 핵심적인 질문으로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의 성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한 자격을 갖기 위해서는 법적 제도적인 요건 이외에 무엇이 더 필요한가?
사회적 소수자 특히 북한이탈주민의 참정권 문제는 단순히 소수자에게 시민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누리게 하는 문제 일 뿐 아니라 더 넓게는 변화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어떻게 수립해야 하는지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최근까지도 단일민족 신화에 기반한 한국의 정체성을 유지 발전시키고 국민국가로서 국민들을 동원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부터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그동안 국민국가의 공식 내러티브에서 주목받지 않았던 집단들의 권리 침해에 대한 문제제기와 정치 참여 요구가 활발해지고, 세계화 촉발로 이주민이 증가하고 남북관계의 변화와 북한 내부사정의 변화로 북한이탈주민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단일민족 내러티브로 국민국가로의 통합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다양한 소수자의 참정권을 일반인들의 권리 행사 수준으로 끌어 올리고 그들의 요구를 제도 정치 안에서 반영하는 것은 새롭게 변화하는 국민국가의 성격을 규정하기 위한 기초적 작업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주민 역시 대한민국 영토에 있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한국으로 오는 즉시 18세 이상이라면 대한민국 국민과 동일한 참정권을 자동적으로 부여 받는다. 즉, 18세 이상이면 모든 선거의 투표가 가능하고 (주민투표권은 19세) 25세 이상이라면 모든 선거에 출마가 가능하다.
21대 총선 이후 극단적 우파 정당들이 고립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의 과도한 우경화는 이들이 점차 한국 사회 내에서 고립될 가능성을 증가시킬 거라고 예측할 수 있다. 21대 총선에서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주도해서 남북통일당이라는 정당을 조직해 비례 대표 두 명을 내기도 했는데, 김주일 국제탈북민연대 사무총장과 한미옥 남북통일당 인천광역시 당위원장이다. 극우정당인 기독자유통일당은 북한이탈주민으로 탈북여성 1호 박사로 알려진 이애란 후보를 공천했다. 이번 총선을 거치며 북한이탈주민들의 보수적 정치화는 더욱 두드러졌고 태구민 후보의 지역구 당선과 더불어 보수화된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냉소적 시각 역시 확산될 조짐이 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제도권 정치 참여가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사회적 대립과 고립을 만들어 내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점은 우려할만하다.
이런 점에서 북한이탈주민의 한국 사회로의 통합을 위해 다음의 두 가지를 제안한다. 우선,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지속적인 시민 교육이 필요하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이들의 정치적 우경화를 지적하고 있다. 많은 수의 탈북단체들이 극우 정치집단과 연결되어 있고 투표 성향 역시 일반 한국 유권자보다 우경화되어 있음이 알려져 있다. 이러한 과정이 지속될수록 북한이탈주민 집단이 정치적으로 고립되고 그로 인해 사회적으로 고립될 여지가 있다. 따라서 이들이 보다 열린 민주주의와 개방된 질서에 대한 학습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시민 교육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둘째, 세계화로 인해 대한민국의 선거권을 부여 받는 사람들의 폭이 점점 넓어지는 상황에서 한국 사회에서의 삶의 경험이 없이 새롭게 국적을 얻게 된 사람들에 대한 참정권을 일정 기간 유예하는 법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21대 총선의 태구민 후보 당선 이후 발생한 강력한 부정적 의견은 정치공동체의 성원으로서 탈북자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반영한다. 이민으로 다민족 국가를 이루고 있는 많은 국가들의 경우 피선거권 규정에는 단순히 연령 뿐 아니라 시민권을 획득한 이후 몇 년 이상의 기한을 두어 정치공동체에 대한 소속감 및 다른 성원으로부터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예를 들면 미국의 경우 연방하원의원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25세 이상인 동시에 시민권을 획득한지 7년이 지나야 한다. 상원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30세 이상이어야 한다. 대통령 취임을 위해서는 미국 영토에서 출생해야 한다. 단일민족주의에 기반한 한국의 입법 체계에서 북한이탈주민은 자동적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해왔고, 그에 따른 참정권이 동시에 주어지는데, 피선거권 부분에서라도 다른 이민 국가들처럼 일정 기한을 두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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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sue Brief는 집필자의 견해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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