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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칼럼] 송경호 전문연구원 - 인공지능시대, 문과가 필요할까


초등학교 4학년 첫째의 꿈은 요리사다. 우주비행사, 조향사였다가 또 바뀌었다. 르 꼬르동 블루에 가겠다니 큰일이지만, 문과는 아니라 다행이다 싶었다. 1학년 둘째의 꿈은 백수다. 아빠가 인체를 개조해서 200년 동안 먹여 살리라는데, 잘 타일러서 100년 정도만 할 생각이다. 어차피 문과는 백수라고 하니, 그냥 처음부터 백수인 게 낫겠다 싶었다.


문과가 ‘문송’한 지 이미 오래다. 인문학은 ‘사회에 쓸모없는, 일종의 유희’로 여겨진다. 의대 못 가면 이과 가고, 이과 못 가면 문과 간단다. 문과 나와 취직하려면 코딩을 배워야 한단다. 문과대 앞에는 대학에서 급여 일부를 지원하는 정보기술(IT) 회사 인턴십 홍보물이 걸려 있다. ‘문과라서 죄송하지만 받아 주시면 안 될까요’ 같은 느낌이다.


인공지능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다. 자료를 취합해 번역하거나 글을 쓰고, 이를 정리해 보고서와 발표 자료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도 수월해졌다. 열 명의 문과생이 하던 일을 두세 명이 하게 됐고, 조만간 한 명이 모든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 한 명이 반드시 문과생일 필요도 없다. 구태여 문과를 없애야 한다고 말할 것도 없이 문과는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이다.


김재인(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은 최근의 저서 <AI 빅뱅: 생성 인공지능과 인문학 르네상스>에서 이런 비관론을 정면으로 논박한다.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기회라고 말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처럼 하루가 다르게 새 지식과 기술이 등장하고 문명의 판이 요동치는 시대라면, 새로움을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인생 초반의 과업이다. 이 능력이 없으면 새로움은 공포가 되고 인생은 지옥이 된다. 따라서 인간으로 계속 살려면 인문학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문학이 급변하는 시대에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능력”을 가장 잘 키워줄 수 있는 교과라는 주장이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인문학의 존재 이유 자체가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고, 논쟁하는 ‘생각의 훈련’을 통해 ‘생각의 근력’을 기르고, 나아가 “인간의 근간이 되는 힘, 가치를 평가하고 삶을 설계하는 근력”을 기르는 것에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필자 스스로 인정하듯 “기존 인문학이 이런 일에 능하다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나 기업뿐만 아니라, 문과 구성원들조차도 그렇다. ‘그래도 인문학은 중요하거든요!’라는 항변은 켜켜이 쌓여온 패배감과 자괴감에 대한 방어기제쯤으로 여겨질 뿐이다. 이에 대해 김재인은 시대가 변한 것처럼 인문학도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사철’에 갇혀 있는 기존의 인문학을 해체하고 ‘뉴리버럴아츠’, 즉 ‘확장된 인문학’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확장된 인문학의 핵심은 ‘확장된 문해력’에 있다. “인문학의 핵심에 있는 ‘언어(文)’의 의미를 확장하고 재정의”함으로써 수학·자연과학·사회과학·예술·디지털 등을 포용하는 “언어의 확장”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인문학을 축소하고 코딩과 반도체에 집중하는 동안 세계의 여러 전문가들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올바른 질문을 하는 능력’, ‘비판적 사고 능력’, 그리고 창의력, 인간 이해, 설득력, 협업, 포용성, 커뮤니케이션 등의 ‘파워 스킬’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알기는 어렵다. 지금 꿈꾸는 직업이 사라질 수도 있고, 노동으로부터 해방될 수도 있으며, 반대로 100년 동안 일해야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래세대에게 해야 할 것은 지금 당장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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