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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칼럼] 송경호 전문연구원 - 세계시민주의는 실패한 걸까

베트남 냐짱에 왔다. 밤늦게 출발해 새벽에 도착하는 고된 비행 일정이었다. 고통 받는 아이들, 불안한 부모들, 그걸 지켜보는 나머지. 승객은 이렇게 세 종류로 나뉘었다. 초등학생 둘에 부모님까지 모신 우리 일행은 이 모두에 해당됐다. 다섯 시간 남짓 공중에서 펼쳐진 ‘혼돈의 카오스 대 환장 파티’가 끝나고 비로소 호텔 침대에 몸을 뉘었다. 피곤이 극에 달했지만, 낯선 온도와 냄새, 오토바이 엔진과 경적 소리에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모든 고통에 이유가 있듯, 온 가족이 사서 고생한 의미가 있길 바랐다. 아이들에게 넓은 세상을 경험시켜주고 싶다. 즐거운 경험을 다양하게 했으면 한다. 외국어 앞에 주눅들지 않고, 외국인 친구도 쉽게 사귀었으면 좋겠다. 낯선 음식도 가리지 않고, 다른 문화에도 쉽게 적응했으면 한다. 그렇게 자라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자유롭고 멋진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이런 바람과 욕심이 뒤섞인 잠꼬대를 하며 겨우 잠들었다.


지금도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세계시민으로 키우기를 희망하며 여행, 유학, 이민까지 사서 고생하고 있다. 이런 부모들의 희망과 기대 자체가 어쩌면 일종의 전 세계적 유행처럼 느껴진다. 특히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세계화를 경험한 세대에게 세계시민은 유토피아적 공상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미래였다. 신세계시민주의 담론이 쏟아져 나오던 당시에는 머지않아 지구상 모두가 국민 국가의 경계를 넘어 세계시민으로 살아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사뭇 다르다. 1400만605개의 다른 가능성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작금의 상황은 실패한 미래에 가깝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것은 세계시민주의가 아니라, 그 반대편에 있는 민족주의의 대두, 이주민이나 외국인에 대한 혐오, 국경 통제에 대한 요구, 그리고 이를 실현해주겠다 공언하는 권위주의 정권이다. 에티엔 발리바르는 오늘날 지구적 시민사회라는 ‘이념’이 지구적 내전이라는 ‘현실’로 귀결되고, 테러와 반테러 전쟁, 지역 블록들 간의 지정학적 대립, 국지적 전쟁 등 폭력이 확산되면서 지구적인 규모에서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즉 ‘지구적 디스토피아’로 귀결되었다고 말한다.


어쩌다 우리는 꿈꾸던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에 살게 됐을까? 지구적 규모의 ‘혼돈의 카오스 대 환장 파티’는 언제쯤 끝이 날까? 세계시민주의는 과거의 실패한 유산에 불과할까? 과연 우리 아이들은 세계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한상원 교수(충북대학교 철학과)가 지난해 6월 출판한 논문 ‘세계시민주의의 자기반성: 부정변증법적 비판’은 이러한 질문들에 하나의 단초를 제공해준다.


연구는 1990년대 이후 등장한 신세계시민주의가 일종의 자기모순에 빠졌으며, 특히 경제와 정치, 두 가지 측면에서 결함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요컨대, 경제적 측면에서는 초국적 자본의 세계화 전략과 혼합되면서 역설적으로 배타적 민족공동체와 보호주의에 대한 갈망을 낳았고, 정치적 측면에서는 초국가적 제도에 의한 탈주권적 민주주의를 강조하다보니 민족국가 단위의 민주주의까지 부정적으로 보게 되면서 결국 민주주의 주체가 불분명해지게 됐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는 세계시민주의의 이상이 오늘날 우리가 처한 지구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오히려 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과거의 실패를 조롱하거나 세계시민주의의 이상을 냉소적으로 보기보다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자기반성적으로 숙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세계시민주의가 내재적으로 자기초월을 이룩하고 잠재적 진리내용을 실현하게 될 때, 비로소 우리 아이들은 세계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모든 고통에 이유가 있듯, 과거의 실패에 의미가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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