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호
류 경 아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북한의 기후 위기와 식량난
현 시대의 주요 담론 중 하나가 ‘환경’이다. 기후변화와 쓰레기, 생태계의 문제는 더 이상 지구 차원의 문제가 아닌 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나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은 노 플라스틱 챌린지, 플라스틱 제로 운동, 제로 웨이스트 운동으로 이어지며 소비 선택 기준에 변화가 생기자 기업들도 이런 변화에 대응을 시작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기후변화 위기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2000년대까지 기후변화, 지구 온난화 등을 다룬 북한의 로동신문 기사들은 국제사회의 문제 인식을 전달하는 수준이었다. 국제사회에서 지구 온난화에 대응하는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으며 기후변화로 인해 세계 곳곳은 식량 위기나 생태계 파괴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소개하는 정도였다. 국제사회, 특히 서방국가들이 이러한 기후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논조를 담아내곤 했지만 중대 이슈와는 거리가 멀었다.
2017년 더 강해진 대북 제재에 이어 코로나19의 팬데믹(pandemic)으로 북한은 스스로 봉쇄를 선택했다. 2021년, 북한의 경제위기가 다시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 속에 북한은 기후 위기를 중요한 이슈로 부각하고 있다. 2021년 9월 2일에 열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3차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김정은은 “세계적으로 재해성 기상현상이 우심해지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그 위험이 닥쳐들고 있는 상황”이라며 “적어도 5개년 계획 기간에 강하천 정리와 사방야계 공사, 제방 보수와 해안방조제 공사를 기본적으로 결속하고 정상 관리에 들어갈 수 있도록 계획을 통 크게 적극적으로 세워야 한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북한에서 이상기후 현상에 대한 보도를 비중있게 다루고 당과 정부는 재해성 기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2019년 초, 겨울 이상기후 현상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보도되었고 2021년 6월 4일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생태계 보호사업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환경보호법과 바다오염방지법 등을 수정 보충하고 대기오염방지법을 채택하여 환경보호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법적 토대를 강화했다고 한다. 2021년 5월 28일 보도를 통해 북한의 국가비상재해위원회가 재해성 기후에 대처하기 위한 사업 추진하기로 했다는 것을 시작으로 농업부문에서는 하천정리, 해안방조제 건설 및 보수공사(6월 1일 보도), 수산부문에서는 해상경보시 선박 대피 수역 정해주는 조직사업을 진행하고 해안 구조물 보강공사 추진(7월 3일 보도), 채취공업부문에서는 광산들 홍수에 의한 갱 침수 예방(8월 7일 보도) 등의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컴퓨터 화상망체계, 물길정리, 관개구조물 보수 사업 등의 대책을 강구하고(6월 7일 보도) 일기 예보와 대풍, 폭우, 해일 발생과 이동경로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 판단하여 지방에 신속한 통보 체계를 완비하고 있다(6월 13일 보도)고 중앙방송이 전했다. 인민 경제 모든 부문에서 재해성 이상기후에 대처하는 사전 대책을 수립하고 특히 농업부문의 극복 사업을 강력히 전개한다고 로동신문을 통해 알렸다. 과거에 기후변화의 위기를 북한의 일이 아닌 다른 국가들의 문제로 인식하고 국제 협력의 차원에서 바라봐왔던 북한이, 이제는 기후 위기를 북한에 직접적인 문제, 인민의 삶과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당국이 기후변화 문제를 부각하는 이유는 북한의 농업 생산량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해성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를 막는 것이 새로운 5개년 계획 수행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북한이 기후 변화를 이전과 다르게 북한 내부의 실질적인 문제로 연결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농업생산력, 식량의 부족이다. 김정은은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근간으로 인민대중제일주의를 내세우며 인민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고 삶의 질 향상을 중시하는 노선을 선택했다. 그러나 현 상황은 김정은조차 2021년 6월 15일 노동당 8기 3차 전원회의에서 “지난해 태풍 피해로 알곡(식량) 생산 계획이 미달 ... 현재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 있다”고 언급한 것처럼 북한의 식량 부족이 현실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110톤, 세계식량계획(WFP)은 86만톤의 식량이 부족해 북한을 식량 부족국으로 재지정했다. 작년과 올해 홍수로 인해 농업생산성이 떨어진 것을 이상기후로 인한 재해의 영향으로 해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둘째, 농업생산력이 하락해 식량이 부족한 원인을 지도자 김정은의 국정 실패가 아닌 이상기후, 기후변화로 원인을 돌리고 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와 비교하면 1990년대 중반에는 러시아과 중국으로부터의 지원 중단과 무역 감소의 상황에서 연이은 홍수와 가뭄으로 인해 극도의 경제위기와 식량난으로 이어졌다. 반제, 자주를 외치며 선군정치로 정권의 생존을 유지했다. 현재는 강도 높은 국제 제재에서 코로나19와 이상기후를 식량난의 근본 원인으로 간주하며 반복되는 자연재해 피해의 원인을 일꾼들의 책임 문제로 돌리고 있다. 1990년대나 현재나 식량난의 원인을 최고 지도자의 미흡한 대처와 국정 운영 실패가 아닌 다른 원인으로 전가하여 지도자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새로운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혹은 그렇게까지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는 시각이 팽팽하다. 중국과 베트남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체제 전환에 있어서 그 시작이 농업 생산성의 향상이었음을 생각하면, 경제체제의 개혁과 권위주의 권력의 안정을 위한 기본 조건이 인민들의 식량안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990년대의 고난의 행군 시기와 같이 극심한 식량난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북한에서 청년들을 비롯해 사회에 대한 통제를 높여가는 상황은 사회 이탈에 대한 대비처럼 느껴진다. 인민 경제와 생활 향상에 힘써 온 김정은이 식량난을 무거운 국가적 문제로 인식하여 국가적 역량을 동원하는 모습은 식량 문제를 정권의 안보 문제로 연결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Issue Brief는 집필 자의 견해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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